- [뮤지컬 ‘원효’ 리뷰] 원효, 애욕 못참아 파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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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계를 불사한 사랑’ 등 선정적 카피 당혹스러워
상업적 화려함만 추구해 ‘화쟁사상’마저 왜곡시켜- 2011.05.02 16:57 입력 발행호수 : 1095 호 / 발행일 : 2011년 5월 4일
- ‘파계를 불사한 사랑’ 등 선정적 카피 당혹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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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 4월22일 ‘뮤지컬 원효’가 막을 올렸다.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총50억원의 제작비, 최첨단 기술의 뮤지컬이라는 수식어답게 무대는 화려했다. 여기에 “작품은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는 제작진의 말처럼 작품 구석구석에 배치해놓은 코믹과 슬랩스틱의 요소들은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기에도 성공했다.
‘뮤지컬 원효’는 ‘파계를 불사한 사랑’ ‘신라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라는 다소 자극적인 홍보문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잡아끌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보다 더 구미를 당기는, 유혹적인 카피는 없을 듯 싶다. 그러나 이런 자극적인 문구가 홍보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원효라는 인물을 그려내는 중요한 흐름으로 설정돼 버린 점은 당혹 그 자체였다. 다행히 뮤지컬 원효는 ‘파계를 불사한 사랑’ ‘신라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라는 진부한 연애담과 세속적 흥미 속에서 가까스로 원효 스님을 건져 올리고 막을 내린다. 파계도, 무열왕을 시해했다는 누명도, 그리고 그를 시기하던 대토와의 갈등도 ‘화쟁’이라는 원효 스님의 법력으로 순식간에 해소되고 막을 내리니 말이다.
하지만 관객으로서는 기생들에게 ‘돌 속의 부처’를 설하던 ‘괴짜 스님 원효’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후 문둥이들과 어울리던 원효 스님 사이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이해할 아무런 단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깨달음을 얻은 원효 스님이 “승려라는 허울을 벗고 다시 세속의 옷을 입겠다”며 요석공주를 찾아가면서 “착각하지마 짐승의 본능을 솔직하게 고백해”를 노래하는 장면은 아름다운 무대와 애절한 아리아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전개와 공감할 수 없는 논리로 인해 작품에 대한 몰입자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 버렸다.
원효 스님은 파계 후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낮춰 부르며 출가자에게 주어지던 모든 특권과 권위를 포기했다. 그러기에 그의 파계는 권위의식과 귀족주의에 빠져 있던 신라 불교에 대한 저항이자 가장 낮은 자리에서 민중과 함께하기 위해 귀족과 승려라는 허명과 허위를 한꺼번에 벗어버린 결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원효 스님의 깨달음과 결단이 ‘짐승 본능에 솔직하기 위함’이고 화쟁 사상이 그런 파계와 애욕을 포장하고 변명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그려지고 있는 듯한 전개는 보는 내내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번 양보해 ‘뮤지컬 원효’에서 대중과의 호흡,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파계를 불사한 원효의 운명적 사랑’에 집중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화쟁사상’을 갖다붙이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칭하던 원효 스님이 자신의 파계를 화쟁으로 포장해 합리화 시켜 버릴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예술인 뮤지컬의 이야기 구조가 학술 논문 같은 논리적 사고나 역사적 고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적당한 각색과 상상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비록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불교인물로 첫 손을 꼽는 원효 스님을 ‘파계를 불사한 운명적 사랑’의 주인공으로 그린 점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화쟁 사상까지 파계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토대로 이용한 점은 화쟁 사상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드러낸 듯 해 겸연쩍음을 넘어 내내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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