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직자가 배부르면 '헛짓' 한다 |
| 신 팔고 극락 팔고 큰 사원 짓는 건 부처도 화낼 사기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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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는 늘 괴로운 종교의 역사적인 문제가 있다. 다름 아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되는 종교 집단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여 왔다는 사실에다가, 그 죽이는 방법 또한 비인간적인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많은 군중 앞에서! 그 이면엔 통치권자와 타락한 성직자들의 뒷거래, 즉 가진 자와의 결탁 아래서 이뤄졌고 결과란 늘 우매한 민중, 선량한 민중의 피해로만 끝났다.
여기서 하룻길 가까운 곳에 리왈싸로 불리는 산중 동네에 초뻬마란 종교적인 성지가 있다. 그곳은 인도 기존의 힌두교, 불교, 또 자인교나 시크교까지에 속하는 광범위한 성지로써 일 년 내내 순례자가 그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필자가 처음 그곳을 갈 때는 이쪽 티베트 스님들을 그냥 호기심으로 따라갔을 뿐이다. 25년 전이다.
높은 산 위에 어찌 그런 예쁜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는 소박한 티베트 절 하나와 조그만 힌두 사원 하나가 서로 아담한 배경으로 주위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호수에서 약 2km 위쪽 바위산에 동굴이 있는데 여기가 실제적인 성소로 땀을 뻘뻘 흘리며 두세 시간은 족히 걸려 올라가야 했다. 여기가 바로 성지일 수가 있는 성자의 수행동굴인 것이다. 아래의 호수는 이 동굴 수행자의 신통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 올라간 뒤에 눈에 들어오는 히말라야 설산 연봉의 장관은 그야말로 여태껏 올라오며 흘린 땀과 가쁘게 몰아쉰 숨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그 자체만도 보람과 기쁨이었다. 그러면서 야 내가 정말 성지에 왔음을 스스로 느끼고 신심을 북돋우며 환희의 보람을 느꼈다.
그런 공사기간에 주위 인도 산골마을 힌두교 주민들이 이곳 히마찰 주 정부 지사에게 탄원을 하고 시위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즉 기존의 자기들 땅에 저렇게 큰 종교시설을 취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막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쳐내는 격이리라. 다행히도 주지사의 종교적인 넓은 관용의 중재로 마무리되기도 했다. 인도 땅엔 어떤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함께 공존해야 된다는 설득으로 주민들을 달래게 되었다.
막상 알고 보니 이 프로젝트를 인도 정부에 허가 낼 때의 조항과 다른 작업, 본래 서류상의 인도에선 난 역사적인 인물 불타 석가모니 불상이 아닌 자기들 종파불교 전통의 한 인물 불상을 조성한 것에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법적인 문제로써 끝내 달라이 라마도 행정적인 서류를 확인하고는 인도 정부의 처사에 어떤 발언을 못 한 것이다. 마지막 그곳을 떠나 올 때 한 말씀이란, “저렇게 크게 돈 들여 만든 불상이 법은 설하지 못해”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젠 큰 절과 함께 부유해져 먹고사는 것이 다 갖춰지니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쉽게 세계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는 아직은 젊고 새파란, 소위 린포체라는 스님들, 생각해 보라.
일생 수행해도 어려운 수행 길은 내던지고 티베트 불교만이 하고 있는 예식을 한다고 그 얼마나 나도는지. 하필이면 그 단골 방문 소재지가 한국이라니. 물론 그 행사에는 참가비가 따른다. 종교가 예식에 언제부턴가 얼마짜리라는 가격이 정해져 온다. 한마디로 흥정되는 상품으로 전락 되어 버렸다. 얼마 전 전화에 “어느 OO린포체가 환속한 거 맞아요?”라는 좀 성급한 문의 전화다. “그렇게 들었다”라고 답하니, “에이, 작년 한국 왔을 때 동참금(참가비) 내고 그 린포체한테 관정도 받았는데” 운운 하면서 실망스런 말투다. 아직은 공부해야 될 나이에 많이 나돌더니 이국 여인과 인연 되어 승복을 벗게 되였다고 한다.
명목이야 얼마나 그럴싸하고 좋은가, 성전을 신에게 봉헌한다면서 사후를 보장 받는 듯 하는 보장을 미끼로 착한 민중을 이끄는 일이라니. 사실 신이나 부처가 그따위 신전이나 사원의 불상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리와는 먼 종교가 아닌 저속하기 짝이 없는 인간에 대한 모독이며 무례이기도 하다. 아니 사기극이다. 나아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이끈다면 그 성직자는 저속하고 비열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어디서나 반대 의견을 해왔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우리 부처님 정각 터인 성도지 자체에 의미가 있고, 그 옛날부터 숭앙해 온 정각 대탑 자체로 불교도 신앙의 의미가 있기에 그 어떤 큰 불상이나 사원 건축을 노골적으로 반대해 왔다. 그러나 필자는 어떤 명함이나 타이틀이 없어 막말로 씨가 먹히겠는가. 사실 부다가야 정각 대탑과 주변 전체가 우리나라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나 석굴암처럼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 역사 유적보존물이기도하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아쉬운 나이에, 또 그런 큰일을 하겠다고 세상 만방을 다니더니 어쩌지 하면서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사실 인도의 가난한 민중을 위하는 데에 그 큰 비용을 쓴다면 우선 사람을 위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것은 법에 맞고 또 이 시대에 해야 할 실질적인 일이기도 하다. 돌아가신 마더 데레사 수녀가 하신 것처럼 순수한 사람을 위한 봉사의 일은 왜 못할까. 이런 일이 참으로 해야 할 숭고한 우리들 인간의 일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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