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다시 경허를 생각한다.

천해 2012. 10. 6. 19:42

[특별 기고]


다시 경허를 생각한다.

2012년 09월 10일 (월) 08:24:00 허정_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불교학연구소 소장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를 찾다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는 짙은 안개 속에 있어서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그만큼 부처 대접을 받아본 사람도 없고, 그처럼 마설(魔說)이라는 비방을 들은 이도 없다. 그를 찾아나서는 사람은 끝내 절벽 앞에 서게 된다. 그가 경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경허를 찾는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금년은 ‘경허스님 열반 100주년’, 그것을 기념이라도 하려는 듯, 윤창화는 경허의 주색(酒色)을 꺼냈다. 불교평론에 발표한 ‘경허의 주색(酒色)과 삼수갑산’이라는 논문의 요지는 “경허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경허의 酒色은 욕망의 충동으로 인한 파계이며, 그가 말년에 자취를 감춘 것도 젊은 날의 삶을 부끄러워하였기 때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허에 대한 평가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경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된 것처럼 언론들은 “최고의 선지식 경허, 주색잡기 참회했다”(한겨레), “고기 먹고 여색 즐기며 늘 당당했던 경허스님도 말년엔 반성하느라 은둔했다”(서울신문)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내가 아직 경허를 제대로 그려낼 역량은 없으나 이러한 기사와 논문을 보았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스쳤기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논자가 경허를 그려내는 재료는 1918년 3월에 발행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이다. 이능화는 “세인(世人)들이 말하기를, ‘경허화상은 변재(辯才)가 뛰어나고, 그가 설한 바 법은 비록 옛 조사라고 할지라도 이를 뛰어넘는 이가 없다’고 한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그러나 그것은 제멋대로일 뿐 아무런 구속을 받음이 없어 음행(淫行)과 투도(偸盜)를 범하는 일조차 꺼리지 않았다.....총림(叢林)에서는 이를 지목하여 마설(魔說)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능화는 경허스님을 한 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쓴 책은 경허가 열반한 후에 들었던 소문을 적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능화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더욱 그의 말을 신뢰하기 어렵다. 이능화는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도 포함된 인물이다. 역사학자 이이화는 이능화를 “민족사 왜곡과 식민사학 확립의 주도자”라고 평가하고 있고, 최병헌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을 찬양하고 협력하며 평생을 살았던 이능화는 무사자오(無師自悟)의 경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다”라고 평가한다. 민족사를 왜곡하고 경허를 몰랐던 친일학자가 들리는 소문을 기록한 글을, 경허를 비판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다.

 

또한 이능화는 “雖然 蕩無拘檢 至犯淫殺 不以介意”라고 적고 있는데 반하여 논자는 “그러나 그것은 제멋대로일 뿐 아무런 구속을 받음이 없어 음행(淫行)과 투도(偸盜)를 범하는 일조차 꺼리지 않았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살인(殺)’을 ‘도둑질(偸盜)’로 바꾸어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바대로 한때 경허가 계룡산에서 영주사미를 죽였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것은 헛소문이었을 뿐, 뒤에 경허의 결백은 밝혀졌다. 이 사실 까지는 알지 못한 이능화는 경허가 살인을 했다는 소문만을 듣고 “음행(淫行)과 살인(殺)을 범하는 일조차 꺼리지 않았다.”라고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허가 이미 살인 누명을 벗었다는 것을 알고 난 사람이라면 “음행과 살인을 범하는 일조차 꺼리지 않았다.”라고 적지는 못하리라. 경허가 살인을 했다고 적은 것은 이능화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그대로 적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허를 비판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자료는 1938년에 발표된 김태흡(金大隱스님)의 ‘人間 鏡虛’이다. 김태흡은 “경허대사처럼 부처님 대접을 받아본 사람도 없고, 경허대사처럼 악마(惡魔)라는 혹평과 마종(魔種)이라는 비방을 들은 이도 없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은 1918년 이능화가 마설(魔說)이라고 표현한 것을 20년 뒤에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김태흡의 ‘이능화 따라하기’가 2012년 윤창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암은 스승 경허에 대하여 “후대의 학인들이 화상의 법과 교화(法化)를 배우는 것은 옳으나, 화상의 행리를 배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람들이 믿을 수는 있으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人信而不解也)”라고 적고 있는데 윤창화는 “사람들이 믿을 수는 있으나(人信而)”를 빼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不解也)”라고만 해석하여 마치 한암이 경허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한암이 이렇게 말한 것은 경허의 행동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경허의 행동이 어떤 마음자리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후학들이 드러난 행위만을 따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경허의 삼수갑산행을 논자는 “경허가 악마(惡魔) 마종(魔種)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듣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삼수갑산으로 도피했다”고 보고 있다. 그 이유로 그는 “경허가 평소 그가 깊은 허무, 고독, 늙음, 무상 등에 젖어 있었고, 남한이 아닌 서북단의 오지인 갑산을 택했고, 이름을 박난주로 바꾸었고 유생 차림으로 입적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그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것일 뿐,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 그가 제시한 경허의 삼수갑산행에 대한 모든 이유는 기존에 경허의 행위를 심우도의 마지막인 입전수수(入廛垂手), 이류중행(異類中行)으로 보았던 이유이기 때문이다.

논자는 경허의 주색과 관련된 일화는 매우 많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위이며 과장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허의 깨닫지 못했고, 경허는 파계자이며, 경허는 도피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경허가 선(禪)은 다시 일으켰지만 불교는 깊은 병에 들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의 말처럼 경허에 의해서 불교가 병들었을까? 또 이능화의 말처럼 세상 납자들이 음주식육과 행음행도(行淫行盜)하는 것이 모두 경허(鏡虛)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학자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마땅히 인정한다고 해도 경허를 모든 불교의 폐단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울러 나는 ‘경허가 만공과 함께 길을 가다가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의 입을 맞춘 것’, 그리고 ‘해인사에서 문둥병에 걸린 여인과 여러 날 동숙(同宿)한 것’등을 파계라고 말하고 경허를 파계자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경허의 존재가 만공이나 한암과 같은 고승이 없었다면 경허는 진작 폄하 되었을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경허는 천하에 감출 것 없는 빈 거울이다. 경허는 누구에 의해서 훌륭해지고 누구에 의해서 낮아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어머니 앞에서 발가벗은 모습으로 법을 보이고’ ‘점안식 법상에서 술과 돼지고기를 바랑에서 꺼내 삶아 오게 한 것’을 보고 망측하다거나 해괴한 짓거리로만 보는 사람이라면 그는 영원히 경허를 볼 수 없으리라.

 

올해 재간된 ‘술에 취해 꽃밭에 누운 선승 경허’(민족사)에서 저자 일지는 경허를 역사적인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경허는 한국선의 도화선에 불을 당기고 영원한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였다. 그리고 경허는 실종자이기도 하다. 경허의 실종과 불귀(不歸)는 망국(亡國)의 조선, 식민지 대한제국의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너무도 조선적인 비극이 응축되어 있다.”

 

일지의 안목처럼 경허를 말할 때 우리는 식민지 대한제국을 살아야 했던 시대적 상황과 스승 없이 홀로 깨달은 자가 걸어가야만 했던 고단한 길, 즉 끊임없이 치열하게 최후까지 자신을 밀고 간 사나이, 죽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를 점검했던 사나이를 보아야한다.

만공은 스승 경허의 입적 소식을 듣고 나서 아래와 같은 시 한 편을 지어 바쳤다.

 

善惡過虎佛 선악과호불 선과 악이 호랑이와 부처보다 더한 자,
是鏡虛禪師 시경허선사 그 분이 바로 경허선사이시다
遷化向甚麽處去 천화향심마처거 천화하시어 어디로 가셨나 싶었더니
酒醉花面臥 주취화면와 술에 취해 꽃 속에 누워계시네

 

위와 같은 만공의 고백을 해석함에 있어서 “善은 깨달음의 세계요, 惡은 주색 등 막행막식의 뜻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경허를 보지 못한 것인 동시에 만공의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악이란 주색의 막행막식이 아닌 삿됨을 쳐내는 파사현정의 사나운 회초리이다. 그 회초리는 분별과 망념에 떨어진 중생심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주는 자비의 다른 얼굴이다.

 

지나온 100년 동안, 경허의 일은 세간에 회자되며 승속을 넘어서서 경계를 바라보는 한계와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호불호(好不好)를 넘어왔다. 경허가 깨달음에 안주함을 버리고 비도(非道)의 보살행에 들어서 진흙탕에 빠지고 얼굴에 진흙을 바름으로서 경허는 다른 어떤 선사보다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우뚝서게 되었다. 자기를 더럽혀서 더러운 때를 닦아주는 걸레처럼. 스스로 걸레가 되어 동사섭 하는 스승, 세간에 물들까봐 겁내지도 않고 물들지 않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도 않는 자! 그가 경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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