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풍실추 사태’ 확대에 정부 입김 작용했나?
- 성호 스님 폭로 날 조현오 전 청장 검찰에 출두
최시중·박영준 등 정권실세 비리 보도 크게 줄어
조계사, 동자승 청와대 방문 취소…불쾌감 표출- 2012.05.18 13:06 입력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발행호수 : 1147 호
최근 백양사에서 발생한 승풍실추 사건이 과도하게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그 배경에 청와대 등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정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청와대로 집중되고 있는 비판 여론을 돌리기 위해 이번 사태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조계종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 듯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 조계사는 5월18일 예정돼 있던 동자승들의 청와대 방문을 취소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례적으로 진행되던 동자승들의 청와대 방문이 취소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으로 불교계와 대립각을 세우던 지난 2008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조계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현 정부가 자신들에 대한 비판여론을 돌리기 위해 불교계를 이용하려 했다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며 “그 동안 동자승들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 청와대 방문을 진행해 왔지만 현 정부가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조계사 관계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종단 안팎에서는 이번 승풍실추 사태의 배후에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 세간언론이 이번 사태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9일, 성호 스님이 백양사 소속 스님 8명이 밤샘 내기포커를 친 동영상과 함께 검찰에 고발하면서부터다.
물론 출가수행자가 담배를 피우며 밤샘 내기포커를 치는 충격적인 동영상은 세간의 관심과 질타가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임에 분명하다. 이런 까닭에 세간 언론들은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이날 주요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에 앞 다퉈 보도했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지만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발언’으로 유가족들로부터 고소를 당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기로 돼 있었다.
조 전 경찰청장의 발언에 대한 사실 여부는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이슈였다. 검찰조사결과 사실로 드러날 경우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 등 야권 대권후보들의 정치적 행보가 크게 흔들릴 수 있고, 허위로 드러날 경우 현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길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 전 경찰청장의 검찰 출두는 세간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성호 스님이 폭로한 동영상 탓인지 조 전 경찰청장의 검찰 출두는 세간의 주요 이슈가 되지 못했다. 또 연일 언론으로부터 집중표적이 됐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비리의혹에 대한 기사도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때를 맞춰 검찰은 성호 스님의 고발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직접 수사를 결정하고 즉각적으로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는 등 신속한 대응 방침을 흘리고 언론은 이를 확대 보도했다는 지적이다.
성호 스님이 언론에 2차 폭로한 ‘신밧드 룸싸롱 사건’도 의도적으로 부풀려졌다는 시각이 많다. 사실 “자승 스님과 명진 스님이 룸싸롱에 간 적이 있다”는 성호 스님의 주장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진행돼 왔던 사안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성호 스님은 조계사, 청와대,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 같은 내용을 주장하며 1인 시위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당시 어떤 세간 언론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랬던 언론이 최근 성호 스님의 입을 빌려 처음 제기된 문제인 냥 앞 다퉈 보도하는 것도 결코 순수해 보이지 않는 게 종단 안팎의 시각이다.
현대사에서 불교계가 정치권의 희생양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고자 총칼로 무장하고 사찰을 난입했던 10·27법난이 대표적인 사례다. 10·27법난은 5·18광주민주화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신군부가 돌연 “사찰에 비리의혹이 많다”는 여론 몰이를 통해 군홧발로 사찰을 짓밟고 불교계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세운 사건이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일부 스님들의 일탈행위가 빌미가 됐지만, 이번 사건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사에서 불교계가 끊임없이 정치권에 이용되고 또 그로 인해 불교 위상이 실추되는 사건이 끊임없이 되풀이 된 것은 불교계 내부의 뿌리 깊은 정권예속화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불교계가 종교로서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권의 힘을 빌려 종단 내부의 권력을 얻거나 또 다른 이권을 누리려 했던 경향이 적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치권은 늘 ‘불교계는 다루기 쉬운 집단’ 정도로 여기게 됐다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교계는 구태에서 벗어나 종교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이를 통해 대사회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더 이상 정치권으로부터 불교계가 이용당하는 사건이 재연되는 것을 막는 첫걸음이라는 지적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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