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편향

전통문화·역사성 배제 주민불화·종교갈등 유발

천해 2013. 9. 6. 07:28

 

전통문화·역사성 배제 주민불화·종교갈등 유발
가톨릭 성역화 무엇이 문제인가
 
2013.09.02 16:27 입력 발행호수 : 1210 호 / 발행일 : 2013-09-04

암자가 성당으로 탈바꿈
절 길은 가톨릭 순례길로
역사적 가치 훼손 우려도

 

 

▲서울 서소문 공원 내 순교자탑.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한국 가톨릭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성지가 있다. 정식 명칭이 ‘천진암 성지’다.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이곳은 과거 사찰이었다. 그러나 사찰명칭을 딴 성지명이 무색하게도 ‘천진암’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은 수원교구의 주도로 100년 계획의 ‘천진암 대성당’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곳 천진암 성지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천진암은 조선시대 암자다. 스님들은 박해를 피해 찾아온 가톨릭 신자들을 보호해줬다. 스님들의 보호 아래 가톨릭 신자들은 이곳 천진암에서 성서를 강독하고 서학을 공부하며 한국 가톨릭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천진암이 한국 가톨릭의 발상지로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나라의 명을 거역한 채 가톨릭 신자들을 숨겨준 대가는 혹독했다. 천진암은 불타고 수많은 스님들이 희생됐다.


지금 터만 남은 천진암 주변은 메머드급 대성당 건립을 주축으로 한 성역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가톨릭 신자들을 보호했던 사찰 위에 성당을 세우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 노 비구니 스님이 절터에 작은 절을 짓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가톨릭 성지화에 등떠밀려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천진암 사례는 특정 지역을 성지화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이 본래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가 왜곡·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다.


서울 중구청이 추진하고 있는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가톨릭 신자들의 순교터이기에 앞서, 조선시대 국가적인 통치행위가 이뤄진 역사적 공간이다. 때문에 순교 성지로서의 의미를 필요이상으로 강조하는 것은 특정종교에 치우쳐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산시가 내포문화숲길 및 아라메길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톨릭 순례길 조성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천장사 주지 허정 스님에 따르면 최근 서산시가 조성한 아라메길에 천장사를 통과하는 기존의 10km 길이 사라지고 가톨릭 성지순례길로 만들어졌다. 스님은 “천장사는 엄연한 문화재 사찰이자 전통사찰”이라며 “가톨릭 순례길 조성을 위해 전통 사찰길을 없앤 것은 전통사찰의 역사성을 무시당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문화·역사적 측면에서 아무리 의미 있는 성지화 사업이라도, 해당 지역이 본래 지니고 있는 역사·문화적 중첩 여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지화 자체보다 추진과정에서 주민 갈등을 유발하거나 종교간 형평성 및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절차상 문제 등이 불거지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횡성군이 지난 2002년부터 추진해 온 유현문화관광지가 대표적이다. 원래 명칭은 ‘바이블 파크’로, 한국 네 번째 천주교회인 풍수원성당을 중심으로 가톨릭 성지를 조성해 횡성지역의 신관광자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부지 확보과정에서 주민들이 ‘정교분리 위배’를 문제 삼으며 횡성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1심에서 승소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2009년 대법원이 횡성군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공사를 재개,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성지화 사업이 지역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일례로 눈길을 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성지화도 좋지만 불교의 경우 수천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전통문화의 한 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